된장찌개를 할까 싶어 냉장고를 열었다. 명절에 정말 큰 두부, 명절에 일가친척 다 나눠 먹을 만한 두부를 받아왔기 때문에. 일단 된장찌개부터 하자. 그런 생각으로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을 나섰는데.
복도에서 내려다보니 아파트 단지 입구에 회트럭이 와 있다. 왜? 왜 왔지? 오늘은 목요일이 아닌데? 오늘은 월요일인데?
나는 감자는 잊어버린다. 아이와 놀고 있는 남편을 향해 소리친다. 내 몸은 이미 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으니까. 난 이미 달리고 있으니까.
“오빠! 회 트럭 왔어! 오늘 저녁은 회야.”
달려 나가면서도 초조하다. 추워지는 건 화요일부터라고 했는데, 월요일 저녁부터 벌써 심상치 않다. 그 자리에서 해산물을 잡아 손질해주는 트럭이니까 추위앞에 장사 없다.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는 사이 정리하고 가셨을까 봐 나는 속도를 올린다.
회트럭을 만난 기쁨을 감췄어야 했는데, 사장님과 그다지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갑자기 주절거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목요일이 아닌데 오셨길래 신나서 뛰어나왔어요.”
말하면서 아차 싶다. 만약 맘에 드는 물건이 없어서 그냥 돌아가게 되면 어쩌려고 이다지도 주책을 떨었지. 아차 싶은 마음을 달래며 빠르게 눈을 굴린다.
낙지, 난 치과 치료 중이라 좀 질긴 녀석은 아직 어렵다.
해삼과 멍게, 글쎄? 새해를 맞이 하야 내가 비록 한 살 더 먹었어도 넌 아직 어른의 해산물이야.
굴, 난 2020년 이후로 굴 보이콧을 선언했다. 나에게는 질병의 해산물.
도다리와 방어가 남았다.
명절이란 무엇인가. 결국 기름에 부친 음식의 파티가 아닐지. 나는 좀 담백한 게 먹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방어는? 너무 기름지다. 사실상 기름 그 자체. 그러나 반 마리라면? 입가심으로 충분할 것 같다. 방어 반 마리와 도다리 한 마리. 그것이 내가 원하는 조합이다.
“사장님, 방어 반 마리도 될까요?”
“....음.”
사장님은 좀 고민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건 어렵다는 눈빛 그리고 잠깐의 침묵. 그 시간 동안 나는 수조 안의 방어를 본다. 좀 작네. 반 마리는 안 될 거였구나.
“아, 보니까 한 마리만 되겠어요. 그쵸.”
사장님께 스스로 깨달았음을 내비친다. 그리고는 묻는다.
“사장님, 그러면 도다리랑 방어 중에 뭐가 더 맛있어요?”
“방어죠. 철이잖아.”
그런데 사장님이 덧붙인다.
“싸게 해줄게요.”
“아 그래요? 방어 한 마리 얼마 할까요, 사장님?”
나는 얼마나 싼지 궁금하다. 도다리는 한 마리에 2만 5천 원. 남편과 먹으려면 두 마리는 사야 한다. 그런데 사장님은 왜인지 바로 답이 없다. 앞 손님이 주문한 멍게를 손질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요거 마저 하고요.”
왠지 느낀다. 이건 그냥 지금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사장님은 뭔가 타이밍을 보고 있다. 약간 장난스러움이 섞인 미소. 뭐지. 뭐길래 그러시지. 설레며 기다린다. 사지도 않을 해삼을 들여다보며.
그때 갑자기 사장님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다. 앞에서 기다리는 손님이 보이지 않게 돌아서서. 그리고는 쉿.
“...?”
공평한 건 정의로운 거다. 정의로운 건 옳은 거고. 그러나 단골이 된다는 건 때로 귀여운 편애가 있음을 서로 비밀로 간직하는 것이 아닐지.
방어 한 마리 2만원. 실제로 싼 것인지 아닌지 몰라도 괜찮다. 맛있게 먹었으니까. 심지어 그 날의 방어. 맛있을 만큼 기름졌다.
2023년 1월 25일 수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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