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병원에 갔어야 했던 아침. 병원에 다녀와서 어린이집도 가야 했던 아침. 오전 진료만 보는 병원이라 서둘러야 했던 아침.
갑자기 전기가 나갔고, 거실로 나와보니 물이 흥건했다. 베란다로 나가 보니 눈까지 오네.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나도 좀 씻고 입고 먹고 나가려면 전기는 좀 들어와야 하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많이 어둡지 않지만 불편하다. 게다가 거실에 고여있는 이 물은 어디서 내려오는 거지. 계속 뚝뚝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내 옆에 서서 물감을 달라고 한다. 무까! 무까! 나는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아이에게 재차 묻는다. 그러나 아이는 참아주지 않는 존재. 급기야 울기 시작한다. (너 사실은 처음에 구까!라고 했잖아. 왜 점점 무까로 바꾸는 건데)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전화해 자초지종을 묻고 해결을 요구해야 하는데, 활화산처럼 끓어오른 아이도 잠재워야 한다.
나는 갑자기 유체 이탈한 기분이 된다. 아니 그냥 유체 이탈 하고 싶다. 지금 이 상황 말이야. 심리 테스트와 똑같다, 그렇지? 가스레인지에 물이 끓고 초인종이 울리고 아이가 울고 뭐 그럴 때 제일 처음 해결하러 가는 곳? 어디로 먼저 가야 하나요?
현실이 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눈 오는 날이라 택시도 잡히지 않는다. 마을버스를 타러 가는 길, 아이가 넘어져 옷이 젖는다. 젖은 채로 갈 수 없다. 추우니까.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냥 다 포기해버릴까 싶다. 병원도 가지 말고 어린이집도 가지 말자. 그러나 안 가면?
언젠가 해야 한다. 그게 아마 내일일 거고.
나는 이를 악물고, 아이를 타일러 병원으로 향한다. 길이 미끄러우니 아이를 계속 안고서. 겨울 옷을 입은 아이는....무겁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냐 하면은.
집은 전기가 아직 들어오지 않고 아이가 갖고 놀던 물감 놀이가 그대로 내팽개쳐져 있지만, 아이는 어린이집에 갔고 나는 나의 도피처다.
오늘의 내가 정말 너무 많이 대견하여 벅차오르는데, 이걸 어디다 얘기하지 싶어 이곳에 쓴다. 이곳은 행복에 대한 것을 쓰는 곳이지 않았나. 정말 많이 행복하다. 글로 쓰는 즉시,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평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평평하든 울퉁불퉁하든 행복해.
당신의 오늘 하루 시작은 이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그러니 신경 거슬리게 조금씩 꼬이는 일이 있어도 쟤보다는 낫지, 하고 풀어보시기를.
2023년 1월 27일 금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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