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옆에는 항상 비서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옳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막겠다는 듯 바른말만 하면서요. 늘 걱정스러운 얼굴로.
가만히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럴 수 있는 건가?
주인공이 뭐라고 그 사람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거지?
밥을 먹든 굶든 뭘 하든.
왜 주인공에게 필요한 모든 걸 다 해결해주는 거지?
아무리 비서라도 말이야. 모든 비서가 그렇지는 않다고.
당신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는 그럴 수가 없는 거잖아.
저는 계속 그런 눈으로 비서를 지켜봤습니다. 무슨 일을 벌일 게 분명했으니까요. 주인공이 안심한 틈을 타 뒤통수를 날리는 사건을 내심 기대했습니다.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때마다 저는 어둠 속에서 비서가 등장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빌런으로요. 그러나 자꾸만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때야 저는 다시 비서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아, 이 사람은 진짜였구나.
진짜 주인공이 나쁜 일을 겪지 않도록 돕고 싶은 거구나.
정말로 주인공을 걱정하고 있었던 거였어.
누군가를 순수하게 조력하는 인물을 목격하는 일은 어딘지 낯섭니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가 배신과 반전을 향해 갈 때, 순수한 조력자는 어딘지 구식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믿을 만한 오랜 친구.
믿을 만한 직원 혹은 동료.
당신을 진심으로 돕고 싶은 친구나 연인.
근사한 주인공이 되는 일은 몹시 어렵지만, 동시에 위에 쓴 아주 ‘믿을 만한’ 조력자가 되는 일도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제가 비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을 지도 모르겠어요.
단 한 번도 툴툴거리지 않고 까다로운 주인공의 입맛을 맞추고, 동시에 주인공을 진실로 걱정하는 저 모습.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해준 적도 없지만, 동시에 나 역시 가져본 적이 드문 든든한 인물이었으니까요.
아무런 꿍꿍이 없이 타인을 도우려는 인물. 그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시련을 겪다가 진짜 아주 위험해지기 직전, 극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될 겁니다. 작은 이야기가 눈덩이처럼 몸을 부풀렸다가 필요한 때에 어디론가 수렴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요.
어딘가에서 장치로 쓰이는 순수한 조력자를, 장치가 아닌 주인공으로 오래 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어떤 조력자는 주인공이 아니어도 충분히 근사하지 않은지 문득 생각합니다.
제가 (마치 주인공이 된 양) 몇 주간 지내보니 의심은 오히려 아주 간단한 일이었고, 누군가를 믿는 건 훨씬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설레는 일이었어요.
자신 곁의 누군가를 믿기로 했다면, 몸 사리는 일보다는 역시 뭐든 부딪혀 보기로 하는 것이 훨씬 어울리지요. 내심 따뜻하고 안전한 방에 누워 가만히 있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믿어주는 누군가를 위해 적진으로 뛰어들어야 할 거고요. 그러니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설렐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씁니다.
드라마야 어찌 되건, (지금까지 드라마 얘기 였습니다..)
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조력자가 되고
반대로 나에게 조력자인 누군가가 동시에 자신만의 주인공일 때
어떻게 존재하고 싶다는 답이 조금 보입니다.
추신.
이랬는데, 그 비서..
반전 인물이면 이 편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2023년 1월 31일 화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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