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울면서 어린이집에 가던 아이가 오늘은 밝은 표정으로 등원했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린이집에 있는 엄마, 아빠 사진을 보라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말하며.
때때로 아이가 나에게 보고 싶다고 말하는 일이 있다.
아빠 보고 싶어요.
엄마 보고 싶어요.
혹은 친구 이름을 대며, “누구 보고 싶어요.” 대체로 강아지나 고양이, 코끼리를 대며 “코끼리 보고 싶어요. (코끼리 인형을 가져다주면 고개를 저으며) 진짜 코끼리 보고 싶어요.” 라고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아이 마음속에 있는 보고 싶다는 감정은 무엇일지 생각한다. 어떤 모양일까. 어떤 느낌이 들면 이것이 보고 싶은 것이구나, 생각하는 걸까.
물론 보고 싶은 마음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니다. 나도 누군가 보고 싶다. 그런데 누군가를 막연히 보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 사람과 나눴던 대화, 그 사람과 마셨던 술, 대책 없는 깔깔거림 같은 것을 다시금 느끼고 싶은 것이지. 보고 싶은 상대와 할 수 있었던 즐거운 일을 또 하고 싶은 거니까.
그러나 아이의 보고 싶음은 어쩐지 좀 다르다. 막상 보고 싶어 하던 이가 눈앞에 있어도 별다른 일을 하지 않을 거면서 늘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면은 말이다. 오히려 쑥스러워서 도망가는 일이 더 많다.
생각해보니, 나도 아이가 보고 싶다.
막상 아이가 내 눈앞에 있으면 할 일이 너무 많이 생기므로 피곤하다.(?)
그러나 아이가 잠들거나, 어린이집에 가면 아이가 보고 싶다. 아이와는 내가 원하는 만큼’만’ 대화를 나눌 수도, 깔깔거릴 수도, 술을 마실 수도 없지만 아이가내 눈앞에 아른아른 존재했으면 하는 마음만으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이가 느끼는 보고 싶음도 이런 것일까?
내 눈앞에 있어 줘. 그냥 그걸로도 충분해.
그러고 보니 아이를 제외하고, 정말로 순수하게 누군가 보고 싶기만 했던 날이 있었나.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인간이 최초로 그 감정에 이름 붙였을 때의 원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 아주 적은 양으로도 신경을 건드릴만큼 진하디진한 것.
내 보고픔에 불순물이 섞였든 아니든, 나도 보고 싶은 사람이 좀 있다. 그러나 요즘 정말 시간이 잘 나지 않아 선뜻 그러자고 하지 못하고 있네. 아무리 추워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 날씨가 시작되었고 해도 길어졌으니 달력을 좀 펼쳐야겠다. 당신에게 곧 연락이 갈 거다. 나의 연락이.
2023년 3월 10일 금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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