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아이를 어렵게 따라가고 있을 때, 누군가 우리를 알아보고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돌아보니 동네 잡화점 사장님. 아이가 할머니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걸 듣고 “이모 사장님”으로 불러 달라고 정정한 바 있는, 유쾌한 사장님이다.
(아이는 여전히 할머니 사장님으로 부르는 것은 비밀)
그분도 손주가 있어서인지 늘 아이에게 밝게 대해 주시는 것이 감사했는데, 그날은 갑자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위아래로 훑어보시는 것이 무서울 정도.
“...그...애기 엄마 맞아요?”
“...네?”
“아니. 이 애기는 내가 아는 애기가 맞는데, 애기 엄마는 내가 모르던 얼굴인데...?”
머쓱해진 나는 웃으며 “아마 모자를 안 써서 그런가 봐요”라고 말한 뒤 이미 사장님에게 관심이 없어진 아이가 멀리 뛰어가는 것을 잡으러 자리를 떴다. 내가 돌아서서 갈 때까지도 사장님은 혼자서 심각한 표정으로 갸우뚱갸우뚱. 나도 아이를 쫓아가며 갸우뚱갸우뚱. 우리 모두 다 같이 갸우뚱 갸우뚱한 날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평소처럼 모자를 쓰고 아이와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사장님을 만났을 때
“맞네! 애기 엄마 맞네! 어우, 어제는 내가 몰라봤어! 마스크 때문인가? 호호”
라는 말에 나는 좀 웃었다.
아이 없이 나 혼자 마스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돌아다닐 때는 마주쳐도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나의 식별 코드는 우리 아이인가. 알록달록, 팔랑팔랑 거리는 아이가 무채색과 무표정의 내가 이 동네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린다. 이 동네에 훨씬 오래 살았고 열심히 돌아다녔던 나보다, 아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더 많다. 아이에게 방긋 웃어 주시던 아파트 관리 직원들이, 혼자 있는 나와 인사를 나눌 땐 어쩐지 온도가 낮은 것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일.
아이는 자신을 알아봐 주는 어른들과 인사하고 돌아설 때면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인서가 좋아서 그러는 거야?”
나는 좀 고민하다가 일단은 “응, 맞아”라고 대답한다.
아직은 모두가 너를 좋아한다고 믿는 일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 덕분에 엄마가 이 동네에 살았다는 걸 기억하는 이가 전보다 많아진다.
희미해졌다고 생각해졌는데, 어쩌면 더 또렷해지네.
2023년 3월 21일 화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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