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는 월드워z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월드워z를 안 봤다고요?
<서진이네>에서 최우식이 박서준에게 좀비가 되면 어쩔 거야? 와이프가 좀비가 됐는데 형은 멀쩡해 그럼 어쩔 거야? 아 그래? 그러면 와이프가 좀비가 됐고 딸과 형은 멀쩡해 그럼 어쩔 거야? 라고 물을 때
나는 눈을 반짝였다. 좀비라.
고문 장면도, 살인 장면도, 전쟁 장면도, 싸움 장면도 견딜 수 없는 나지만 좀비는 견딜 수 있다. 사실 견딜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반긴다. <월드워Z>는 10번도 더 봤다. 모든 장면, 모든 순간을 줄줄 욀 수 있을 정도. 그러나 내가 <월드워Z>에서 못 보는 장면이 딱 두 개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하나는 브래드 피트가 이스라엘로 좀비의 비밀을 찾으러 가서 한 군인을 만나는데, 이 군인이 좀비에게 물렸을 때 그 팔을 순식간에 잘라버리는 장면. 아직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둘은 그 군인과 브래드 피트가 어렵게 이스라엘을 탈출하는 비행기를 탄 후, 브래드 피트가 군인의 팔을 소독해주는 장면. 이 역시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 외의 좀비 장면은? 모두 최고다. 특히 높은 성벽을 타고 오르는 좀비는 볼 때마다 경외심이 인다.
나는 자타공인 상상 전문가니까 상상하지 않을 수 없지.
그럼 나는 그 영화에서 어느 인물쯤 되나 하면은 당연히 브래드 피트 가족 구성원은 아니다. 그들은 끝까지 살아남지 않나. 브래드 피트는 주인공이므로 어차피 강하다. 문제는 그의 아내도 정말 강하다는 것인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브래드 피트 가족이 처음 피신한 아파트에 사는 한 가족을 기억하는지. 그들은 브래드 피트 가족을 피신시켜준다. 브래드 피트는 그들에게 같이 탈출할 것을 제안하지만, 남자는 집에서 구조를 기다리자고 했고 여자는 브래드 피트를 따라가자고 주장하다 결국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죽고 만다. 나는 아마 그 가족 중 하나가 아닐지. 어떠한 과정이 있었건 그 와중에 아들만 살려 내보내면서.
가족 모두 살아남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들은 선택해야 했을 거다. 아들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아이에게 권총을 쥐여주고 브래드 피트를 따라갈수 있게 돕기도 결정했을 거고. 좀비일 지도 모를 낯선 이를 피신 시켜줄 만큼은 용감했으나, 날뛰는 좀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건 잘못이 아니지. 내가 지금 나일지도 모를 사람들이어서 편드는 게 아니다. 암 그렇고말고.
난 아마 끝까지 살아남는 주인공을 못될 거다. 신체조건도 조건이지만, 당황하면 두뇌가 정지하는 인간이므로.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의 남편과 아이를 생각하니 근육이 좀 꿈틀대는 것도 같네. 일단 어린이집에 간 아이를 데려와야 할 테니까 운동화 끈을 질끈 묶어야지. 집에서 어린이집까지는 뛰면 3분 정도. 어린이집에서 다시 집까지는 아이를 안고 있어서 좀 느릴 테니 10분 이내. 이렇게 쓰니 좀 살고 싶어진다. 상상만 해도 무섭고.
2023년 3월 24일 금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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